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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FFLER] 나라는 폭망해도 백성들은 살아있네 "대한민국인 만만세"

100년 전 백성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쳐야 했던 이유를 찾아 아관파천 길을 걸어봄 ③

머니투데이 이예진 크리에이터, 홍재의 기자, 신선용 인턴디자이너, 박광범 기자, 하혜주 크리에이터|입력 : 2019/03/0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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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100년 전 3월1일.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만명이 외친 "대한독립만세!" 거리로 뛰쳐나온 백성들은 목숨을 걸고 이렇게 외쳤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3·1운동이 일어난 이듬해 4월 중국 상해에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어. 우리의 주권을 끝까지 지키겠다며 임시로 정부를 만든 거지. 왜 우리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땅에 가서 임시정부를 세워야 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때 그 시절 조선으로 돌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아보려 해. 조선이 폭망ㅠ하는 과정에 무슨 사건들이 있었는지 말이야…(또르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운동.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운동.




덕수 폐하(고종)가 살던 궁=덕수궁.
덕수 폐하(고종)가 살던 궁=덕수궁.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있던 고종은 1897년 2월 1년 만에 다시 궁으로 돌아갔어. 다만 원래 살던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갔지. 러시아 공사관이랑도 매우 가깝고 주변에 영국, 미국 등 다른 나라 공사관도 있으니 일본을 피하기도 좋고.

각국 공사관들이 주위에 쫙 깔려있던 덕수궁.
각국 공사관들이 주위에 쫙 깔려있던 덕수궁.

경운궁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가 다른 궁들이 다 불에 타는 바람에 사용하게 된 행궁이었어. 행궁은 원래 왕이 궁궐 밖으로 나갈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별장)을 말하는 건데 경운궁은 처음엔 월산대군의 집이었어. 왕이 갈 데가 없으니까 일단 있던 집을 리모델링 해서 쓴 게 바로 경운궁이야.

고종이 덕수궁으로 돌아갔을 땐 즉조당과 석어당뿐.
고종이 덕수궁으로 돌아갔을 땐 즉조당과 석어당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을 때만 해도 경운궁엔 즉조당과 석어당 등 건물 두 채 밖에 없었대. 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고종은 정전(임원 회의하는 건물)인 중화전을 비롯한 다른 건물을 새로 지으라 명했고, 경운궁은 점차 궁궐의 모습을 갖춰갔어.

경운궁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과 정관헌.
경운궁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과 정관헌.

지금의 덕수궁을 보면 다른 궁궐과 달리 서양식 건물들이 좀 보이지? 유럽의 궁전과 비슷한 돌로 된 3층짜리 건물인 석조전, 다과를 즐기는 정관헌 같은 건물들도 고종이 경운궁에 온 뒤에 세워졌어.

고종은 국제사회에 조선의 근대화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서양식 건물이라 생각했어. 다른 나라가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이미 근대화를 이룬 나라란 걸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그래야 국제사회로부터 독립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경운궁으로 돌아간 고종은 원래 청나라 사신이 머물던 숙소인 남별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원구단(환구단)을 세웠어. 그 원구단에서 1897년 10월 12일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다고 전세계에 선포했지. (누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거야.

조선에 쳐들어왔던 청나라(병자호란) /사진=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조선에 쳐들어왔던 청나라(병자호란) /사진=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여기엔 청나라 및 다른 나라들한테 보내는 숨은 메시지가 있어. 더 옛날로 돌아가면 1636년에 청나라가 조선을 쳐들어왔는데(=병자호란) 이때 조선은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지. 당시 조선의 임금인 인조는 한양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도망가서 저항하다가 청나라한테 무릎을 꿇고 항복했어. 무릎만 꿇으면 그나마 나았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삼배구고두) '청나라 선생님, 제발 봐주세요'라 빌었지.

이때부터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가 됐어. 이렇게 오래도록 청나라를 모시며 지내던 신하 나라 조선이 '우리도 황제할래. 이제부터 너네랑 우리랑 같은 레벨^^'이라 선언한 거야. "야, 청! 니네가 우리한테 뭐라고 하든 이제 조선, 아니 대한제국은 대한제국만의 길을 갈 거야"라고 통보한 거지. 청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 미국, 영국 등 세계 강대국들한테도 이제 우리나라 뜯어먹고 장난질 하지 말라고 하는 거고.


대!한!제!국!! 이걸 왜 못 알아듣니!/사진= tvN '신서유기' 방송화면
대!한!제!국!! 이걸 왜 못 알아듣니!/사진= tvN '신서유기' 방송화면

하지만 대한제국이 암만 떠들어도 다른 나라들은 듣지 않았어. 힘도 돈도 없는 쬐만한 나라가 '황제'니 '제국'이니 해봤자…(폭풍눈물) 지금부터 대한제국 스타트! 외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호시탐탐 한반도를 먹으려 노리던 일본놈들 손에 나라가 넘어가고 말았는 걸…(눈물폭포)

서울 중구에 위치한 웨스틴조선호텔 자리가 옛 원구단이 있던 곳이야. 일제는 우리나라의 멀쩡한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 지어올리는 게 취미였는데 원구단도 그 중의 하나였지. 일제는 원구단 자리에 조선총독부 직영인 조선철도호텔을 지었어. 그래도 아직 그 앞에 황궁우와 석고 몇 개가 남아있으니 서울시청 근처를 지날 때면 한번쯤 방문해보길.


황제가 된 고종은 군대를 만들고 학교도 세우고 공장이나 회사를 만들어 산업을 키우는 등 개혁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보려 했어. 대한제국을 독립국가(獨立國家), 말 그대로 홀로 설 수 있는 나라로 키우기 위해 힘을 기르려 한 거야. 이제 다른 나라들에 휘둘리며 살지 않겠다는 거였지.

고종 ㄴㄴ 고종황제 ㅇㅇ
고종 ㄴㄴ 고종황제 ㅇㅇ

패기는 좋았지만 역사가 스포하듯 이러한 시도는 다 물거품이 됐어.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또 이기면서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일본이 가져가게 됐거든. 일본은 여러 번의 조약을 맺으며 조금씩 조금씩 조선의 주권을 뺏기 시작했어.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미국도 우리의 뒤통수를 쳤어. 미국이 필리핀을 먹는 대신 일본이 조선을 가져가는 걸 인정하는 거래를 비밀리에 진행한 거야. 미국과 일본이 벌인 어둠의 짝짜꿍이 바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야.

미국: 그래를 하르 와따. 우린 필리핀, 일본 너넨 조선 OK?/사진=tvN '신서유기' 방송화면
미국: 그래를 하르 와따. 우린 필리핀, 일본 너넨 조선 OK?/사진=tvN '신서유기' 방송화면

일본은 대한제국의 권리를 하나씩 차례대로 지네들 거로 만들었어. 1905년엔 다른 나라와 소통할 수 없도록 '외교권'을 뺏어갔고 1907년엔 아예 고종을 쫓아내고 아들 순종을 왕으로 세웠지. 이제 왕을 맘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일본은 대한제국의 군대를 없애버렸어. 군인들은 의병이 되어 총을 들고 일본에 저항했지만 폭망길을 걷던 대한제국의 운명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지.

일본은 1910년 대한제국을 완전히 접수하고 말았어. 그 과정엔 대한제국의 X맨들이 활약하는데 그 이름도 유명한 이완용이 이때 등판하지. 일본은 대한제국과 일본을 하나로 합친다는 내용의 문서를 당시 총리대신으로 있던 이완용에게 들이밀었어. 이완용은 이 나라 팔아먹는 문서에 순순히 서명을 했지.

이렇게 허무하게 일본은 대한제국을 지들 것으로 만들었어. 이 조약이 '한·일 합병 조약'이야. 이제 대한제국은 공식적으로 일본 게 돼버렸어.

결국 일본 손에 넘어간 대한제국(눙물ㅠ)/사진=KBS '열린음악회' 방송화면
결국 일본 손에 넘어간 대한제국(눙물ㅠ)/사진=KBS '열린음악회' 방송화면




우리는 끊임없이 나라를 되찾으려 노력했어. 하지만 그럴수록 일제의 억압이 심해졌지. 아무리 죽이고 무시하고 괴롭혀도 우리의 독립 의지를 꺾을 순 없었어. 오히려 독립에 대한 염원은 더욱 강해졌지.

그러던 어느 날 고종이 일본놈들 손에 독살됐다는 소문이 돌아. 뭐? 일본놈들이 하다하다 고종을 죽였다고? 이 소문은 우리가 3·1운동을 준비하는 데에 불을 지폈고, 결국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 함성으로 터져 나온 거야.

이틀 뒤 치러진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덕수궁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어. 그렇게 1년간 전국에서, 심지어 해외에서도 3·1만세운동이 벌어졌어.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3월의 함성은 그해 4월까지 이어졌고 그 영향으로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을 국호로 임시정부가 세워졌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실질적인 일들을 시작하자는 뜻이 모여 세워진 임시정부였지. '대한민국'이란 나라 이름은 고종이 어떻게 해서든 지켜보려 했던 '대한제국'을 잇는다는 의미로 지어졌어.

100년 전 우리의 외침과 노력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겠지? 우리 나라와 민족의 영혼을 되찾기 위해 그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타국에서나마 우리의 정부를 세우려 했던 그때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자랑스런 조상들이라구! 비록 답답하고 슬프고 화 나는 대목이 많지만 그때 그 시절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아야만 현재와 미래의 우리를 만들고 준비할 수 있겠지?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공부하고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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