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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빵]'아는 만큼 보인다?' 역사 '알못'을 위한 시대극 '박열' 흥망포인트.avi

머니투데이 홍재의 기자, 비디오뉴스팀 서민선 기자|입력 : 2017/07/0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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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 포스터. 1922년 '청년조선'에 실린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이준익 감독이 필사해 포스터로 제작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박열' 포스터. 1922년 '청년조선'에 실린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이준익 감독이 필사해 포스터로 제작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박열? 박살?'

제목만으로는 무슨 뜻인지 1도 모르겠는 영화 '박열'은 일제강점기 일본과 싸운 한 조선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 영화다. 청년의 실제 이름이 바로 박열.

'사도', '동주'에 이어 시대극을 주로 다뤄온 이준익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이제훈(박열), 최희서(가네코 후미코), 민진웅(홍진유), 김인우(미즈노 렌타로) 등이 출연했다. 배우 최희서는 '박열'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고. (#'동주'의 일본인 '쿠미'로 나왔던!)

시대극 영화인 만큼 당시 역사를 알고 보면 영화를 200% 즐길 수 있다. '박열'은 90% 이상의 고증을 자랑하기(감독 주장) 때문에 더 그렇다.

영화를 보기 전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

1. '박열'의 시대적 배경은 1923년(일제강점기) 일본 도쿄.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관동 지역(간토·시즈오카·야마나시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한다.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불탔다. (사망자+행방불명자 총 40만 명)

2. 다음날(9월 2일) 제2차 야마모토 내각이 출범해 피해를 복구하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계엄령(국가 비상 사태시 군대가 치안을 유지하는 긴급 명령)을 선포한다.

3. 하지만 일본 사람들의 불만이 계속되자, 일본 내각은 그 화살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다닌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퍼뜨린다.

4. 이에 격분한 일본인들이 자경단(군대, 경찰, 시민으로 구성)을 꾸려 조선인을 학살하는데...(관동대학살) 무려 6000여 명의 조선인 및 일본인 사회주의자들이 희생당한다. ('독립신문' 특파원 보고에 의하면 집계된 숫자만 6661명.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고.)

5. 예상보다 너무 많은 조선인이 학살 당하자, 일본 내각은 학살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선인이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스캔들을 조작한다.

6. 이때 일본 내각 눈에 띈 사람이 바로 박열이다.

배우 이제훈과 최희서가 13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박열'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이제훈과 최희서가 13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박열'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

여기서 잠깐 실존인물 박열에 대해 파헤쳐보자.

1. 박열은 18세에 3.1운동(1919년)에 참가한 후 탄압을 피해 일본 도쿄로 건너가게 된다.(#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도쿄에서 박열은 혈거단·의거단·흑도회·흑우회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을 한다.

2. 박열은 무정부주의자였다. 1923년 4월 박열은 또 다른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가네코 후미코, 홍진유 등과 함께 '불령사'를 설립, 항일운동을 직접 주도하기 시작한다. '무정부주의', '불령사'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기사를 참고!

☞관련기사 : [꿀빵]시대극 전문 감독 이준익의 '박열' 고증부심.avi

3.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이후 박열과 후미코는 일본이 관동대학살 사건을 숨기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붙잡힌다.(#대체 어떻게 알았지?) 이후 '황태자 암살 기도'를 조작하려는 일본 내각에 일부러 이용당한다.

4. 박열의 계획 1단계는 스캔들(황태자 암살 기도)을 키워서 세계와 조선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이끌겠다는 것. 2단계는 일본의 대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관동대학살 사건을 전세계에 알려 역전홈런을 치겠다는 것.(대박 큰그림!)

5. 영화는 박열이 불령사를 조직한 이후부터 대법정에서 판결을 받는 것까지를 다룬다. (자세한 이야기는 영화에서 확인!)



흥포인트 하나. 철저한 고증에 기반한 영화

이 영화는 (감독에 의하면) 90% 이상의 고증을 거쳤다. 당시 신문 기사와 기록 등을 모아서 철저하게 따져봤다고. 박열이라는 몰랐던 인물에 대해 공부하고 싶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이 영화는 딱 좋을 듯.(#영화도 보고, 공부도 하고!)

흥포인트 둘. 사이다

이전까지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다룬 영화는 보통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박열'은 영화를 보는 내내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일본에게 한 방 먹이는 느낌!)

비유하면 다른 항일 영화를 보고 나와 태극기를 보면 뭔가 뭉클하고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박열'을 보면 태극기를 들고 뛰쳐나가고 싶다. (응..?)



망포인트 하나. 불분명한 조연들

아쉬운 점도 있다. 조연들의 역할이 불분명. 철저히 고증을 거친 만큼 조연들도 모두 실존인물이고 항일운동을 함께한 열사들인데, 영화에서는 그 비중이 작다.

박열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도 조연으로 나온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박열 주변의 열사보다 일본 내각을 연기한 조연들이 더 빛났다는 사실.

망포인트 둘. 너무 짧은 사이다

영화에서는 박열이 기소되기 전 일본 검사와 서로 기싸움 하는 부분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통쾌한 감정(#사이다!)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기소 후 일본 대법정에서 그들을 조롱하는 장면, 이 뿐이다.(너무 길었어..)

그럼에도 박열은 기존 항일 영화와 분위기, 내용, 영화적인 문법 등이 다르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눈이 번쩍 뜨이기도…. 식상한 영화에 질린 사람에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