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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빵]'대립군' 500년 전 광해로 2017년 대한민국을 말하다(feat.문재인 대통령)

머니투데이 이슈팀 서민선 기자|입력 : 2017/06/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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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립군 포스터/사진제공=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코리아)
영화 대립군 포스터/사진제공=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코리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대한민국의 지난겨울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민주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집회,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와 이어진 조기대선까지. 캐도 캐도 계속 나오는 고구마 줄기와도 같은 역동적인 사건의 연속이었다.(역시 다이내믹 코리아)

덕분에 영화계는 때아닌 비수기를 맞았다. 모 감독은 '정치 이슈 때문에 영화 홍보가 안된다'며 볼멘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무로는 끊임없이 정치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지난 1월 개봉한 조인성, 정우성 주연의 영화 '더 킹',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생각하게 하는 '보통사람', 서울시장 선거를 다룬 '특별시민' 등이 그 예다.


여기에 또 한 편의 '정치' 영화가 등장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이정재, 여진구 주연의 '대립군'이다. 1592년 임진왜란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언뜻 보통의 '역사 드라마'로 보이지만 그 내용을 들춰보면 엄연히 '정치' 영화다. 500년 전 조선의 한 임금의 이야기를 통해 2017년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문재인 대통령?)는 누구인지 조용히 물어오기 때문이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 부부가 5월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19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후 국회 밖에서 기다리는 국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사진=국회사진취재단
문재인 신임 대통령 부부가 5월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19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후 국회 밖에서 기다리는 국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사진=국회사진취재단


◇'광해=문재인' 평행이론설?

영화 '대립군'에서 임금 선조는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곧 도성을 버리고 명나라로 피란을 간다. 그리고선 당시 18세였던 어린 '광해'(여진구)를 왕세자로 삼고 조정을 나눠주며 조선을 지키라 명한다. 나라와 백성을 버리다 못해 자기 아들까지 전쟁터에 버리고 간 것이다.

광해는 애초에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 왜군의 추격이 가까워지자 광해는 "임금 같은 거 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하며 괴로워한다. 자신은 단지 아버지께 인정받는 것이 목표였는데, 주변 상황이 자신을 왕세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리더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주변 환경이 그를 리더로 만든 상황. 이는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자서전에서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남고 싶었다"고 언급한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이다.

500년 전 광해와 2017년 대한민국의 문재인.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의 상황에서 왕세자에 책봉된 '광해'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새로운 리더로 당선된 '문재인'은 그 과정부터 매우 닮았다.

둘 모두 특수한 상황에서 리더의 자리에 올랐다. 아니, 어쩌면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리더가 됐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스스로의 의지'로 리더의 길을 선택한 게 아니란 점도 닮았다. 바꿔 말하면 둘은 '시대가 요구한 리더'다.


◇ 왜 하필 광해?

조선의 제15대 임금이자 역대 조선 왕조에서 폐위된 두 임금 가운데 한 명인 광해군은(다른 한 명은 연산군) 지금껏 여러 번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가 됐다. 최근에는 드라마 '화정'에서 차승원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이병헌이 광해군을 연기했다.

여진구가 연기한 '대립군'의 광해는 기존 작품들과는 다르다. 임금이 된 광해가 아닌, 그 이전의 광해를 다뤘다. 이에 대해 정윤철 감독은 지난달 22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완성돼 있는 왕이 아닌, 완성돼 가는 왕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리더의 덕목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광해는 백성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점차 리더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는 현재의 상황과 묘하게 닮아 있다. 지금의 대통령은 분명 '국민이 만들어 낸 리더'다. '백성이 왕을 만들어낸다'는 영화 속 메시지는 '국민의 힘으로 당선됐다'는 현재 대통령의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배우 이정재, 여진구가 5월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진행된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 VIP 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이정재, 여진구가 5월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진행된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 VIP 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늘날의 비정규직 노동자, 대립군(代立軍)

영화 제목이기도 한 '대립군'은 대신할 대(代), 설 립(立), 군사 군(軍)으로 '남을 대신해 군역을 서는 사람'을 뜻한다.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역사서에 자주 기록돼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고 비일비재했다.

정윤철 감독은 '대립군'을 "요즘으로 치면 비정규직 노동자나 계약직 노동자 같은 존재"라고 정의했다. 그는 "지금이나 그때나 있는 사람들은 돈을 주고 군을 회피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군역을 대신 산다는 것만큼 비참한 삶이 없을 것 같다"며 "정규직이 되고 싶어 매달려 가는 그런 (역사적) 이야기가 지금의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부터 지난 '노동절 참사'까지 2017년 대한민국에서는 '위험의 외주화'라고 일컬어질 만큼 비정규직 혹은 계약직 노동자가 누군가를 대신해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군역을 대신 서주는 대립군과 다를 바 없다.

비정규직 문제는 2017년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공식 외부 행사가 공공기관 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 촉구였던 점만 봐도 그렇다.



◇현실 같은 영화 '대립군'

"새로 대통령이 되신 분은 광해가 못 이룬 꿈을 다 이뤄주시기 바란다"고 감독은 말했다. 분명 '대립군'은 지금의 리더에게 직접적으로 많은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동시에 '2017년 지금, 여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 속 광해는 스스로의 힘으로 리더가 되지 않는다. 아니, 될 수가 없다. 대립군으로 대표되는 백성들만이 광해의 유일한 성장 동력이다.

이는 곧 어떤 왕을 만들어 내느냐는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더를 만들어내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역할이니, 우리가 제대로 해야만 제대로 된 리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현실 같은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관객들은 각자의 가슴속에 자신만의 '대립군'과 '광해'를 품고 돌아올 게다.